입력 : 2017.11.03 07:09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벨 문학상 작가의 작품은?]

1. 헤르만 헤세 '데미안'
2.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3.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4. 카뮈 '이방인'
5. 펄 벅 '대지'

지난달 18~22일 Books의 질문에 인터넷서점 예스24의 플래티넘 회원(분기별 30만원 이상 책 구입) 935명이 답했다. 주관식 답변 리스트에 등장한 '노벨상 소설'은 총 85권. 이 중 1위는 61명이 선택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이 책을 아낀다는 한 회원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한 길은 하나뿐인데 그 길을 누군가와 같이 걷고 싶을 때 우리는 데미안이라는 이름의 소년을 고를 수 있다"고 말했다.
2위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한 표 적은 60명의 지지였다. 한 독자는 "각박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주인공을 볼 수 있어서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마다 집어들게 된다"고 했다. 3위 역시 박빙이었다. 59표를 얻은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카뮈의 '이방인'(4위), 펄 벅의 '대지'(5위) 등이 뒤를 이었다.
2주 전 시인 장석주의 리뷰로 '데미안'을 소개했기 때문에, 오늘은 2위인 '노인과 바다', 3위인 '눈먼 자들의 도시' 리뷰를 싣는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국내에 번역한 정영목씨의 시선으로 전달한다.
총 50위까지의 리스트는 조선닷컴 (chosun.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이 리스트를 중심으로 한 예스24 일반 회원의 독자 투표도 오늘(3일)부터 시작한다. 10일까지 예스24 홈페이지(www.yes24.com).
맹렬 독자는?
이번에 설문에 참여한 예스24 플래티넘 회원 진입 기준은 최근 3개월간 예스 24 순수 주문 금액이 30만원 이상. 출판계에서 '진성 독자'라고 부르는 맹렬 독서가들이다. 예스24의 플래티넘 회원은 남성 37%, 여성 63%이며 40대가 41%, 30대가 28%, 20대가 14%를 차지한다. 전체 회원 중 참여 의사를 밝힌 2400명에게 설문이 발송됐다.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민음사
193쪽|8000원
'노인과 바다'를 읽은 건 중학교 때였지만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다"는 문장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25년이 지난 최근이다. 지난 5월 쿠바 여행 중 '노인과 바다'의 배경인 바닷가 마을 코히마르에 들렀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식당 벽에 이 문장이 붙어 있었다.
그래, '노인과 바다'에 저런 구절이 있었지.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곱씹어 볼 기회는 없었다. 시사영어사의 영한대역문고로 '노인과 바다'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짧다고 만만하게 보았는데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로맨스라고는 조금도 없고, 84일간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한 할아버지 어부 산티아고가 길이 5.5m에 무게가 700㎏은 나갈 법한 거대한 물고기를 잡겠다고 망망대해의 배 위에서 분투하는 내용이 책 한 권을 채우고 있었다. 겨우 고기를 잡고 나니 이번에는 고기를 탐낸 상어 떼와의 싸움이 시작되고 결국 상어에게 몽땅 뜯어 먹혀 뼈만 남은 물고기의 잔해와 함께 귀환하는 결말이라니…. '세계적인 작품이란 본디 이렇게 허망한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쨌든 완독(完讀)의 열매는 나름 달콤하여서 TV 퀴즈쇼에서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잡은 큰 물고기의 종류는 무엇인가요?"라는 문제가 나올 때 '청새치'라고 답하며 으쓱해 한다거나 이 작품의 주제를 묻는 객관식 시험 문제를 풀면서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이라는 답에 자신 있게 동그라미 칠 수 있었다.
이제는 안다. 소설 속 노인은 자연과 투쟁한다기보다는 스스로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노쇠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라 인간은 늙어갈수록 더욱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거울을 보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걸 깨달을 때면 '노인과 바다'의 이 문장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곤 했다. "두 눈을 제외하면 노인의 것은 하나같이 노쇠해 있었다. 오직 두 눈만은 바다와 똑같은 빛깔을 띠었으며 기운차고 지칠 줄 몰랐다."
바다가 아니라
자신과 싸웠을 뿐
얼핏 노년과의 싸움으로 보이지만, 결국 '노인과 바다'는 한계에 맞서는 인간의 이야기다. 이 작품을 발표한 1952년, 53세의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 이후 화제가 될 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라는 노인의 독백은 만년의 헤밍웨이가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격려로도 읽힌다.
'노인과 바다'는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혹평이 쏟아졌더라도 헤밍웨이는 개의치 않았으리라. 물고기를 낚는 것보다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과정이 의미 있는 거니까.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노인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녹초가 되었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한다. "아무것도 없어. 다만 너는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곽아람 기자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
472쪽|1만4500원
어느 날 운전을 하다 갑자기 눈이 안 보인다. 뒤에서 경적을 울려대지만 머지않아 그들도 눈이 멀어 버린다. 비상사태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눈먼 자들이 격리되지만 군인들마저 눈이 멀어 버린다. 이곳은 눈먼 자들의 도시가 되고 평온한 일상은 박살이 난다.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그렇게 일상이 비상으로 곤두박질 치는 상황을 그려나간다. 그리고 긴 고난의 와중에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눈이 보이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렇게 이 소설은 언뜻 보기에는 일상-비상-일상이라는 판에 박힌 도식을 따라가면서 비상 상황의 잔혹함으로 독자들의 신경을 혹사하다가 마지막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처음 눈이 먼 의사는 눈먼 자들의 격리 병동에 수용되어 눈먼 폭력배들의 지배를 받으며 참혹한 상황을 견디어야 하고, 수용소를 나와서도 혼란에 빠진 눈먼 도시에서 떠돌이 개들마저 두려워하며 목숨을 부지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내가 이 소설을 사랑하는 것은 이런 지옥이 바깥에서 들어온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일상 속에 잠복해 있던 것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것은 딱 한 가지, 앞이 안 보인다는 것뿐이다. 이 간단한 사건 하나로 일상의 표피가 벗겨지면서 지옥이 터져 나온 것이다.

지옥의 시작?
일상의 이면을 돌아보라
비상사태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일상과 등을 맞대고 있던, 일상의 이면일 뿐이다. 애초에 일상은 비상이 없으면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고, 우리의 평온한 일상은 출렁대는 파도 위에 놓인 판자처럼 늘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사라마구는 이런 인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거꾸로 그 비상 속에 자리 잡는 일상을 포착하여, 일상의 속성 자체가 반복을 통한 비상의 극복, 비상의 일상화라는 것을 드러낸다.
마치 나치의 수용소에서처럼 눈먼 자들의 도시에도 그 나름의 일상이 자리를 잡으면서 비상은 또 다른 일상이 된다. 격리 병동의 폭압적 시스템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몇 사람은 병동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형성한다. 체온처럼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일상의 이 무서운 힘에 그것을 유지해 가는 인간에게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눈이 멀지 않았던 의사의 아내와 그녀의 눈물을 핥아주던 개, 새로운 가족을 이끄는 이 두 존재가 내 기억에 깊이 자리 잡은 것은 이 둘이 그런 항상성의 현현(顯現)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끝나 눈을 뜨면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원래의 일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다시 눈을 뜬 자들이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또 다른 일상을 만들어 갈 것을 예감한다. 일상은 비상한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지속되지만, 그럼에도 늘 변한다. 이 소설은 일상의 이런 변증법적 변주를 보여주며, 그렇기에 우화의 꺼풀을 쓰고 있으면서도 우리 삶의 본질적 형식에 가장 밀착해 있다. 정영목·번역가

'당신의 책꽂이'를 시작합니다
최근 노벨문학상 특집을 하면서, 이 편지에서 약속드린 적이 있습니다. 해외 독자들이 선호하는 리스트 말고, 우리 독자들이 '편애'하는 노벨상 작가와 작품 리스트도 살펴보겠다고요.

오늘 Books는 그 약속을 지키는 기획입니다.
분기별로 30만원 이상 책을 사는 '맹렬 독자'들이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플래티넘 회원들이 그들이죠. 이 탐서치(貪書痴)들과 함께 Books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노벨상'과 함께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가장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책' '당신이 읽은 최고의 자서전·전기' '가장 과대평가됐다고 생각하는 책' 등입니다. 한 달에 한 번가량 이 리스트와 리뷰를 Books에 소개하겠습니다.
설문 결과 흥미로운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벨상 작가의 책' 1위이면서, '가장 과대평가됐다고 생각하는 책' 4위에도 꼽혔더군요. 작품의 명성이나 애호와는 별도로, 반발도 적지 않음을 확인합니다. 20세기 세계대전을 겪던 당시 청년들에게 주는 의미와 지금·이곳 청년들에게 줄 수 있는 함의의 격차가 아무래도 한몫했겠죠.
10여년 전인 2008년, 생전의 주제 사라마구(1922~2010)와 서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3위로 꼽힌 '눈먼 자들의 도시'의 저자이지요.
당시 제 핵심 질문은 '무엇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가'. 1998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 포르투갈 작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세상은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위협하는 재앙과 같다. 이 재앙의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까 묻고 싶어 쓰고 있을 뿐이다."
책 한 권이 세계를 구원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재앙을 막으려는 어떤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가능하겠죠. 따뜻한 11월 시작하시기를. 어수웅·Books팀장
◆ 맹렬독자들이 선택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작품 50(작가-작품-득표 순)
1. 헤르만 헤세 - 데미안(61표)
2.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60표)
3. 주제 사라마구 - 눈 먼 자들의 도시(59표)
4. 알베르 카뮈 - 이방인(58표)
5. 펄벅 - 대지(48표)
6.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39표)
7. 가즈오 이시구로 - 나를 보내지 마(38표)
8. 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34표)
9. 윌리엄 골딩 - 파리대왕(30표)
10. 가브리엘 마르케스 - 백년의 고독(29표)
11. 가즈오 이시구로 - 남아 있는 나날(25표)
12. 오르한 파묵 - 내 이름은 빨강(24표)
13. 모엔 - 붉은 수수밭(21표)
14. 사무엘 베케트 - 고도를 기다리며(14표)
15. 밥 딜런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1표)
16. 알베르 카뮈 - 페스트(11표)
17. 앙드레 지드 - 좁은 문(11표)
18. 앨리스 먼로 - Dear life(11표)
19. 르 클레지오 - 황금 물고기(9표)
20. 어니스트 헤밍웨이 - 무기여 잘 있거라(9표)
21. 헤르타 뮐러 - 숨그네(9표)
22. 가즈오 이시구로 - 파묻힌 거인(8표)
23.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닥터 지바고(8표)
24. 파트릭 모디아노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8표)
25. 하인리히 뵐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8표)
26. 헤르만 헤세 - 수레바퀴 아래서(8표)
27. 헤르만 헤세 - 유리알 유희(8표)
28. 권터 그라스 - 양철북(6표)
29. 알렌산드르 솔제니친 -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6표)
30. 가즈오 이시구로 - 녹턴(5표)
31. 도리스 레싱 - 다섯째 아이(5표)
32. 마르케스 - 백년동안의 고독(5표)
33. 앨리스 먼로 - 행복한 그림자의 춤(5표)
34. 어니스트 헤밍웨이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5표)
35. 앨프리데 옐리네크 - 피아노 치는 여자(4표)
36. 임레 케르테스 - 운명(4표)
37. 존 스타인벡 - 분노의 포도(4표)
38. 헤르만 헤세 - 싯다르타(4표)
39. 윌리엄 서머셋 모옴 - 달과 6펜스(3표)
40. 가오싱 젠 - 영혼의 산(3표)
41. 러디어드 키플링 - 정글북(3표)
4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 염소의 축제(3표)
43. 모리스 메테를링크 - 파랑새(3표)
44. 어니스트 헤밍웨이 - 무기여 잘있거라(3표)
45. 오에 겐자부로 - 읽는 인간(3표)
46.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체르노빌의 목소리(3표)
47. 가즈오 이시구로 -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3표)
48. 오에 겐자부로 - 개인적 체험(3표)
49. 알베르 카뮈 - 최초의 인간(3표)
50. 르 클레지오 - 홍수(3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