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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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생물학자가 쓴 글 임에도 그 선정적인 성격 때문에 국내에서도 숱하게 팔려 베스트셀러 교양서가 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을 뒤늦게야 읽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무신론을 믿는 과학자가 유신론-특별히 기독교-을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몰아세우는 내용이다. 논리적 분석과 논증이 본업이니 오죽 잘하겠는가?
책 전반에 걸쳐 순진하거나 혹은 무지한 종교인들은 샌드백처럼 두들겨 맞으며 그로기 상태에 몰리고 이따금 허공을 항해 헛주먹이나 내지를 뿐이다 (저자는 창조론 측 주장을 제시한 뒤 반박하는 형태를 취하므로 유신론 측 입장이 한치의 모자름 없이 소개된다)
신이 나서 기독교를 향해 맹공을 퍼붓는 도킨스를 읽다 보면 편가르기 싸움하는 초등학생이나 한국의 정치논객들이 연상된다. 진영논리에 물아일체物我一體되어 상대편을 굴복시키기 위해 여념이 업는 와중에 애초에 논쟁에 뛰어든 배경과 이유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종교의 폐해가 싫어 그처럼 적대적이 되었다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종교를 찾을 수 밖에 없음은 정작 그 자신도 인정하는 바이다 (종교를 진화프로세스의 부산물이자 이기적 유전자-밈meme-의 발동으로 해석한다)
사람들에게는 '신'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무언가 의지할 만한 존재가 그리운 것이다. 특별한 의미도 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고 희망보다는 절망이, 기쁨보다는 슬픔이 상대적으로 많은 그리 길지 않은 생이 흐른 후 또한 먼지처럼 사라져야 할 스스로의 암울한 운명을 그나마 지탱시켜 줄 수 있는 어떤 것 말이다.
이는 도킨스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신'의 자리에 '다윈'을 앉혀 놓고 숭배하는 그이지만 예상치 못한 인생의 난관에 부딪쳤을 때 역시나 무언가에 절실히 매달리게 될 것이다 (이런 확신을 하는 이유는 그의 한없이 가벼운 평소 행적이 삶의 급격한 굴곡을 독자적으로 감당할 만한 수양이 되어 있지 않음을 여실히 입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익히 경험한 대로 '논리적 사고와 냉정한 이성' 따위는 결정적인 순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신이 만들어졌다'는 제목처럼 종교의 폐해 역시 인간이 만든 것이다. 신이 없다 해서 크게 달라지거나 해결되지는 않는다. 인간은 굳이 신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대체품을 만들고 그 이름 하에 동종同種의 개체를 수없이 학살하고 학대할 수 있는 존재다. 레닌,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 김정은까지,, 종교박해를 수십배는 능가하는 무신론자들의 도살극 사례는 한세기만 훑어도 차고 넘친다.
그리고 과학은, 비록 종교 교리보다는 낫겠만, 그리 객관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못된다. 과학적 사고의 지평으로 삼는 시-공간 개념 자체가 벌써 상대적인 것 아니던가? 과학적 객관성은 기본적으로 발명된 것이지 발견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최첨단 이론과 자료를 들이댄다 해도 인간이 허공에 세운 공중누각이라는 그 존재론적? 운명에는 하등의 변함이 없다. 도킨스는 저술에서 칸트를 인용하면서도 [순수이성비판]의 핵심 함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쿼크나 빅뱅이론 역시 물리학으로 써내려간, 현 시점에서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이는 또 하나의 멋진 시나리오 일뿐, 지금으로부터 백년 정도의 시간만 흘러도 인류는 전혀 다른 소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철학자 박이문의 주장대로 우주관이란 그 시대 인간의 존재-의미 매트릭스로 포착해낸 세상을 보는 하나의 '틀perspective'일 뿐이다. 바라보는 자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상이한 세계관이 얼마든지 찍혀나올 수 있는 유기체적 주물같은 것 말이다. 브랜드는 다양하다. 헤라클레이토스, 플라톤, 붓다, 예수, 공자, 노자, 주희, 데카르트, 스피노자, 흄, 뉴튼, 아인슈타인, 후설, 하이데거, 레비나스,, You name it !
더 기가 막힌 점은 그렇게 찍어낸 세계관에 따로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인식체계 넘어 저 우주(천문학적 우주가 아닌 삼라만상 혹 능산적 자연)는 여전히 암흑과 침묵 속에 남아있는 미지의 X일 뿐이고 인간은 소멸할 때까지 그저 그 진상을 갈구하며 살 뿐이다.
본인 주장대로라면 십자군 시대보다 더 엄격한 종교국가인 듯 보이는 영미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저자의 제약조건을 감안하더라도 리처드 도킨스는 앞으로 그 깐족거리는 태도를 좀 자중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가 종교 못지 않게 떠받드는 그 대단한 과학기반 무신론을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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