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 14 - 23

제주 여행

경인생 2016. 7. 18. 18:44

 

 


제주여행 가이드

1. 하귀~애월 해안도로

구엄리 구엄포구(동양콘도 앞)

(1) 구엄 돌염전 (2) 도대불(옛 등대)

중엄리 새물(에뜨왈호텔비아무인까페 앞, 해녀촌 못미쳐 바닷가 쪽)

새물: 용천수 --- 식수, 식품 세척, 목욕, 빨래

신엄포구 도대불(옛 등대)

 

고내포구 모습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2. 신창~고산 해안도로

절부암

조선 후기 남편을 먼저 바다로 보낸 고씨부인의 절개를 기리는 바위

3. 수월봉과 엉알해안

엉알(큰 바위아래 알갱이)해안 갈림길; 수월봉 화산쇄설층으로 내려감

아래 동굴처럼 생긴 곳에서 물이 나옴

엉알해안 화산쇄설층

수월봉 남매의 전설

누이 수월이는 어머니의 병 치료에 필요한 오가피를 구하기 위해 수월봉 절벽을 기어오르다 그만 떨어져 죽었는데, 동생 녹고도 누이의 죽음에 한없이 눈물을 흐르다 죽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이 수월봉 절벽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녹고의 눈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녹고의 눈물은 화산재층을 통과한 빗물이 그 아래 진흙으로 된 고산층(불투수성 지층)을 통과하지 못해 흘러나오는 샘물이라고 한다.

 

주상절리(柱狀節理)

마그마의 냉각과 응고에 따른 부피 수축에 의해 생기는, 다각형(多角形) 기둥 모양의 금.

 

 

마치 입맞춤하는 듯....

4. 알뜨르비행장

#태평양 전쟁의 거점기지 모슬포

알뜨르의 '''아래' 혹은 '낮다'는 뜻이고,'뜨르'는 너른 들녘을 말한다. 즉 모슬봉 아래 너른 들판이란 뜻이다. 이처럼 정겨운 이름의 내면에는 전쟁의 아픈 기억이 숨겨져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 비행장(근대문화유산 제39)조성계획이 처음 수립된 것은 1926. 중일전쟁을 준비하던 일제가 중국대륙 공격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193119361차 조성공사가 끝나면서 약 60(18만평)의 비행장이 완성됐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알뜨르 비행장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중국 난징과 상하이 등을 공격하기 위해 일제는 본토 나가사키현의 오무라항공대를 제주도로 이동하고 당시 최신예 전투기였던 '제로젠'과 연습용 비행기 '아카톰보(Akatombo·일명 잠자리비행기)'의 격납고 20개를 만드는 등 2차 확충작업을 벌인다. 당시 알뜨르 비행장에서의 난징 출격횟수는 36, 600기였고, 투하폭탄은 총 300t에 달했다.

 

알뜨르 비행장이 현재 크기와 비슷한 265(80만평)까지 확장된 것은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 모슬포 해안 일대를 미군 등 연합군의 가장 유력한 상륙지점으로 꼽았던 일본군 지휘부는 '()7호 작전(작전지역 16호는 일본 본토)'을 통해 알뜨르비행장을 확장하고, 모슬봉에 레이더 기지를 설치하는 등 군사시설 확충을 서두르는 한편, 만주 관동군 소속 111사단 병력을 이동시키는 등 총 75000명의 병력을 제주도에 집결시킨다. 당시 조선 내 일본군 병력이 21만명 가량이었다고 하니, 총 병력의 3분의1이 제주도에 배치된 셈이다. 가미카제 특공대도 알뜨르 비행장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나가사키 등에 원폭이 투하되지 않았다면, 제주도가 최후의 결전지 '아마겟돈'이 될 수도 있었던 것.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대목이다.

 

#자살특공대 가이텐, 가미카제의 흔적도

현재 알뜨르 비행장 주변에는 풀로 뒤덮인 활주로와 격납고 20, 관제탑, 지하벙커, 샛알오름 고사포 진지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나같이 제주도 주민 등 강제 노역에 끌려나간 부역자들의 밭은 숨결이 배어 있는 곳들이다. 돔형의 콘크리트 구조물인 격납고는 가로 1520m에 높이 6m, 두께 14m로 튼실하게 지어졌다. 20기 중 19기는 원형이 보전됐고 1기는 잔해만 남았다.

 

알뜨르 비행장 옆 송악산 해안절벽에는 섬뜩한 형상의 해안동굴들이 있다. 340m 크기 15개의 동굴로 이루어져 '일오동굴(등록문화재 제313)'이라고도 부른다. 일제가 제주도에 만든 5곳의 자살특공전 기지 중 한 곳. 소형 어뢰정을 숨겨 놓고 미국 함대가 나타나면 어뢰정을 탄 자살 특공대가 돌진해 자폭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 졌다. '인간어뢰'부대를 '가이텐(回天)'이라 불렀는데, 비행기를 타고 자폭했던 가미카제(神風)특공대와 같은 임무였다.

 

#지하 갱도진지의 절정 가마오름

19447월 사이판이 함락되는 등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 지휘부는 이를 계기로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에 대비해 거대한 지하참호 건설을 시작한다. 나고야현에 천왕이 대피할 마쓰시로 대본영 등을 짓는 한편 제주도에도 지휘소, 통신실, 숙소 등이 갖춰진 지하 갱도진지를 조성하게 된다. 제주도내 지하갱도의 총연장은 32.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송악산 샛알오름 아래 1.2짜리 동굴진지를 비롯, 제주도내 360여개 오름 중 약 120곳에 지하 갱도진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경면 청수리의 가마오름 진지동굴이다. 높이 140m의 가마오름 기슭에 자리잡은 진지동굴은 일본이 미국과 최후의 일전을 대비해 구축한 진지 중 최대 규모다. 2길이의 1,2,3땅굴 가운데 제1땅굴 약 300m 구간이 일반에 개방되고 있다. 지하갱도 곳곳에 강제 노역에 시달린 제주도 주민들의 피와 땀이 엉겨붙어 있는 듯하다.

 

참혹한 과거의 흔적 위에 현재는 평화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강제 노역했던 고 이성찬씨의 아들 이영근(55)씨가 아픈 역사를 되짚어보기 위해 2004년 사재를 털어 조성했다.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군수품과 각종 땅굴작업용 도구들을 볼 수 있다.

관람료 30005000.peacemuseum.co.kr,772-2500.

 

5 산방굴

옛날 한 사냥꾼이 한라산에 사슴사냥을 갔습니다. 그날따라 사슴이 한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아 정상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사슴 한마리를 발견하고 급히 활을 치켜들다 잘못하여 활끝으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들이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서쪽으로 내던져 버렸습니다. 그것이 날아와 박힌 것이 산방산이고 그 패인 자리가 백록담이 되었습니다.

실제 산방산이 백록담에 쏙 들어앉을 크기와 형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산방산은 산방산의 여신인 산방덕 전설과 진시황이 용 모양 꼬리를 잘라버렸다는 용머리전설, 광정당 이무기 전설, 금장지 전설 등 빼어난 경치만큼이나 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곳 산방굴에서는 거송의 솔가지 사이로 용머리해안과 형제섬, 그리고 가파도와 마라도가 함께 자아내는 비경을 한눈에 거머쥘 수 있습니다.

 

산방산은 안덕면 사계리 해안가에서 용머리 퇴적층과 이어져 있는 조면암질 용암원정구로, 제주 남서부의 평야지대에 우뚝 서있어 어디에서도 조망이 가능한 종모양의 종상화산체입니다.

 

산 자체 비고 345미터의 거대한 용암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조면암질 용암의 절대 연령치는 포타슘-아르곤 연대측정치가 약 70-80만년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제주의 지표지질을 구성하고 있는 화산암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가정 먼저 만들어진 용암임을 암시해줍니다.

 

용암돔 남측 절벽의 높이 150-300미터 사이에는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풍화혈과 애추가 발달되어 있고, 해발 150미터쯤에 길이 약 10m, 너비와 높이가 약5m인 산방굴이라고 하는 해식동굴이 바다를 향해 특색있는 경관을 이루어 있어 영주십경의 하나입니다.

 

산방굴사로 올라가는 곳인 산방산의 하부지표를 구성하는 지질은 산방산 조면암과 용머리 응회암층을 부정합으로 덮고 있는 신기(新期)의 풍성퇴적층이며, 주변의 단산, 송악산, 사계리 해안의 토적층들과의 층서정립은 앞으로 더욱 상세히 연구해야할 과제중의 하나입니다.

 

산방산은 워낙 산자체의 높이가 높고 해안에 접해 있으므로 해서, 구름이 산머리에 걸려 있거나 휘몰아치는 광경을 종종 목격할 수 있으며, 각 사면 기스락에서는 판이한 기후특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한 이러한 기후특성은 화산체상의 식생에 독특한 특징을 부여하고 있기도 하여, 식물학적으로도 중요한 보호지역이 되고 있습니다.

 

산 정상에는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까마귀쪽나무, 생달나무, 참식나무 등 상록수림이 울창하고, 특히 암벽에는 암벽식물인 지네발란, 섬회양목 등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천연기념물 182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산방산에서 조사된 관속식물은 7918620133변종 1아종으로서 모두 255종이다. 산방(山房)은 산 속의 굴을 뜻하는 것이며, 산방산 남측면에 해발 150m 쯤에 해식동인 굴이 있어 산방산이라 합니다.

표고: 395.2m, 비고: 345m, 둘레: 3,780m, 면적: 988,332,저경 :1,314m

 

6. 용머리해안

용머리는 이 지역의 지형지세가 마치 용이 머리를 쳐들고 바다로 뛰어 들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용머리해안은 수천만년 동안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사암층중 하나로서 오묘한 해안절경을 보는 순간 누구라도 감탄사를 연발하게 됩니다.

 

용머리 해안으로 내려가다 보면 하멜표류기념비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비는 한/네델란드간의 우호 증진과 하멜의 공덕의 증표로 198041일 한국국제문화협회와 주한 네델란드 대사관에 의하여 세워진 것입니다.

 

용머리에 관한 전설 옛날 중국의 시황은 천하를 통일했으나 늘 자신이 이룩한 왕국이 위협을 받을까 전전긍긍하다가 만리장성을 쌓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리서를 보니 탐라섬에 왕후지지(王侯之地)가 있어 제왕이 태어나리라 하니 더욱 더 염려스러웠다.

 

이에 땅속을 훤히 보는 풍수사 호종단을 파견하여 맥을 끊어버리고 혈을 떠서 기를 아예 죽여 버리기로 작정했다. 호종단은 구좌읍 종달리로 들어와 남쪽으로 차근차근 혈과 맥을 끊어나갔다. 그가 산방산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산의 맥이 곧바로 앞 바다로 뻗어내려 막 태평양으로 나가려고 용머리가 꿈틀 대고 있었다. 저게 바로 왕후지지다. 저 놈의 맥과 혈만 끊어버리면 만사 끝이다.

 

그는 한달음에 산을 내려가 막 고개를 내밀고 바다로 나가려는 용의 꼬리를 한 칼에 쳐 끊고 다시 잔등을 내리쳐 끊은 다음 머리를 내리치려고 하자 검붉은 피가 솟구쳐 오르면서 우르릉 우르릉 신음소리를 토하며 구슬프게 울었다. 이렇게 하여 왕후지지의 맥이 끊기고 말았다 한다.

 

7. 대포 주상절리

주상절리(柱狀節理)마그마가 찬 바닷물을 만나면서 냉각과 응고현상을 일으키는데, 그에 따라 부피 수축에 의해 생기는 다각형 기둥 모양의 선이다.

이곳 대포주상절리는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대포동에 이르는 해안을 따라 약 2km에 걸쳐서 발달해 있다. 25만년~14마년 사이에 녹하지악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식으면서 형성된 것이다. 이곳처럼 기둥모양으로 쪼개지는 주상절리는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 수직으로 쪼개지면서 만들어지는데, 대체로 5~6각형의 기둥모양이 흔하다.

가지런한 주상절리 기둥의 묶음을 콜로네이드(colonade)라고 하며,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을 엔타블러처(entablature)라고 한다.

 

8. 쇠소깍

이곳 효돈마을이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어서 쇠둔이라고 불려진 연유로, 효돈천을 흐르는 담수와 해수가 만나 깊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어 쇠소깍이라고 이름지어졌다. 쇠는 소, ()는 웅덩이, ()은 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쇠소는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굳어져 형성된 계곡같은 골짜기로 이름만큼 재미나고 독특한 지현을 만들고 있다.

이곳의 명물 테우는 통나무를 엮어 만든 작고 평평한 뗏목 배로, 줄을 잡아당겨 운항한다.

 

9. 성읍민속마을

제주도에는 "3(三多)""3(三無)"가 있는데, 삼다(세 가지 많은 것)는 돌과 바람과 여자를 말한다. 제주도는 화산으로 인해 돌이 많고, 날씨가 따듯하지만 바람이 세고 많으며, 남자들의 요절(적의 침입과 바다에서 배타다 죽음 등)로 여자가 상대적으로 많음을 의미한다.

삼무(세가지 없는 것)는 도둑과 거지와 집 대문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도둑이

없다는 것은 제주도가 비록 육지에 비해 토지도 척박하고 생활도 어려웠지만 결코 남의 것을 탐내는 일이 없을 만큼 인심이 좋았음을 뜻하며, 거지(걸인)가 없다는 것은 아무리 가진 것이 없고 생활이 어려워도 남에게 빌려쓰기보다 사전에 조냥해서(비축해서) 대비하는 것이 제주도민의 습성이었음을 뜻한다.

특별히 관가나 대갓집이 아닌 한 ,민가에서는 "정낭"이라 하여 나무막대기를 집 출입구에 걸어 사람이 있고 없음을 표시하였기 때문에 대문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 곶자왈

제주 생태계의 허파로 불리는 곶자왈은 표현의 차이가 다소 있지만, 수풀을 뜻하는 과 작지()나 바위 등이 모인 곳을 뜻하는 자왈의 합성어를 뜻한다. , 숲이 우거진 돌무더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곶자왈은 관목이나 야생초가 자생할 수는 있지만, 임업으로는 이용할 수가 없다. 농사 등에 꼭 필요한 흙이 없기 때문이다.

숨골; 곶자왈에 생기는 작은 동굴

잣담; 동물들이 넘지 못하게 쌓은 담

잣길; 잣담 옆 사람들이 다닐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