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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고발자

경인생 2019. 1. 14. 16:54




기자칼럼] 내부고발자 궁지로 모는 정권의 진영논리


입력 2019.01.03 15:25 | 수정 2019.01.04 09:18

3일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고 잠적했던 신재민(33)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로 발견됐다. 그를 걱정했던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를 비난했던 사람들은 ‘관종’이라며 조롱하기에 바빴다. 한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두고 진영(陣營)은 또 갈라졌다.

그가 폭로한 것은 두 가지다. 청와대가 국채 조기 상환을 막고 적자 국채 추가 발행을 지시했다는 것, KT&G와 서울신문 사장 교체에 개입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기재부에 근무하는 동안 보고 들은 것을 유튜브 동영상과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통해 밝혔다. 그는 자신의 폭로 이유에 대해 "순수히 이 나라 행정조직이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 "제가 나서면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고 (정부가) 조금 더 합리적이고 나은 곳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저 말고 다른 공무원이 절망하고 똑같은 상황에 처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청와대가 KT&G 사장교체를 지시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신저’ 비난에 급급한 與
권력을 잡고 있는 이들은 그의 폭로가 못마땅한 듯 했다. 기재부는 그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그가 제기한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오히려 여권을 중심으로 그와 관련해 각종 의혹들이 제기됐다. 그와 관련된 정체불명의 인신공격성 지라시도 돌기 시작했다.

여당 의원들은 그를 깎아내리는 전위대였다. 지난 12월 31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서만 "소위 스타강사가 되기 위해 기재부를 그만두고 메가스터디라는 학원 광고와 본인 광고를 위해 이름을 팔면서"(박범계 의원) "저 사람(신재민)이 저러고 국민들을 놀리고 있어요. 영상을 찍는 이유가 뭐냐? ‘먹고 살려고’예요. 유튜브에서 저런 식의 무책임한,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로 나온, 술자리 방담감도 안 되는 얘기(를 했다)"(김종민 의원) "일탈자, 비위행위자 김태우·신재민 이들의 일말의 가치도 없는 억지 주장, 허위 사실"(어기구 의원) 등의 발언이 나왔다. 홍익표 수석대변인 명의로 "신 전 기재부 사무관의 거듭되는 불법행위, 가짜뉴스와 거짓정보 유포 행위에는 응분의 책임이 뒤따를 것"이라는 경고성 논평도 나왔다. 그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한 이날도 민주당 의원들은 그의 폭로를 "개인의 무분별한 주장"(김태년 의원),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듯 일부분만 보고 전체를 안다는 식의 어리석음을 드러낸 것"(김정우 의원)이라고 했다.

아직까지 신재민의 주장 중 거짓이라고 밝혀진 것은 없다. 특정 정치세력의 사주를 받았다거나, 어떠한 의도를 갖고 폭로에 나섰다는 것도 입증된 바 없다. 그런데도 여권은 그를 몰아세우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신재민(메신저)의 이야기(메시지)는 제대로 듣지 않은 채, 메신저만 때리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내부 고발자에게 이렇게 박했던 적이 있었던가.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2017년 대선에서 ‘공익 제보자 보호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법안을 앞다투어 발의했다. ‘최순실 게이트’ 당시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상무와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을 ‘의인(義人)’이라며 보호해야 한다고 나섰던 것도 민주당 의원들이다. 당시 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은 ‘고영태씨가 범죄 혐의 등을 이유로 발언에 신뢰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고영태의 내부 고발 동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내용이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데, 자꾸 사람들은 동기가 무엇일까를 주요 관심사로 놓는다"며 "고발 동기에 사익이 좀 개입돼 있으면 내용 자체도 사실과 다르거나 그 내용을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것들은 구분돼야 한다"고 했었다.

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2016년 12월 23일 고영태·노승일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의인들을 보호하라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화답하고자 오늘 고영태·노승일 증인을 만났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고영태 증인은 더 여리고 더 착했으며, 노승일 증인은 더 의롭고 더 용기있었다"고 했다. 손 의원은 그들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판도라 상자를 연 분들"이라고 했다.

그런 손 의원이 지난 2일 올린 신재민 전 사무관에 대한 글은 이랬다. "신재민은 진짜로 돈!!!을 벌러 나온 것...신재민에게 가장 급한 것은 돈!!!...나쁜 머리 쓰며 의인인 척 위장하고 순진한 표정을 만들어 내며 청산유수로 떠드는 솜씨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계속 눈을 아래로 내리는 것을 보면 양심의 가책, 또는 지은 죄가 만만치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손 의원은 신재민을 ‘사기꾼’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해당 글은 현재 손 의원 페이스북에서 사라진 상태다.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린 내부고발자
신재민의 첫 폭로 뒤 닷새가 지났다. 그는 닷새 만에 생의 막다른 길목으로 내몰리며 "제가 죽어서 조금 더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죽으면 제 말을 믿어주겠죠"라고 했다. 그는 "이번 정부라면 최소한 내부고발로 제 목소리를 들어주시려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전 이렇게 말하면 그래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재발방지 이야기 해주실 줄 알았어요"라고 했다. 그는 "저는 지금 박근혜·이명박 정부였다 하더라도 당연히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고 했다. 민변이 자신의 도움 요청을 거절했다며 "차라리 그때 이렇게 행동했으면 민변에서도 도와주시고 여론도 좋았을 텐데"라고도 했다.

신재민이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게 된 데는 공포와 절망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신재민의 유서를 보고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에 등장하는 한 장면이 떠올랐다. 6·25전쟁이 터지고 어느날 밤 국군인지 인민군인지 알 수 없는 자들이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자고 있 는 집에 들이닥쳐 전짓불을 얼굴에 비추며 ‘너는 누구의 편이냐’고 묻는다. 공포와 절망이 겹쳐진 이 장면 뒤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전짓불이란 이쪽에서 정직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그리고 진술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더욱더 두렵고 공포스럽게 빛을 쏘아대게 마련일 수밖에 없었다.’ 신재민이 더욱더 큰 절망과 공포를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03/20190103018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