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박사 조경철 선생 살아생전, 대형 고급승용차와 티코 두 대를 운용했단다. 꼭 몰고나갈 장소 외에는 고급승용차는 집에 두고 평소엔 티코를 몰고 다녔단다. 어느 날 조선호텔에 볼일이 있어 티코를 몰고 갔단다. 솔직히 당시의 조경철 선생 정도면 대한민국의 어린애도 알아보는 시절, 그가 운전석에서 내리면 발레파킹은 자동. 그런데 도어맨 조경철 박사를 빤히 쳐다보는 정도가 아니라 눈을 부라리며‘차 빨리 빼!’라며 호통을 치기에‘내가 조경철 이오!’했지만 소용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 후로는 티코를 팔아치웠다나 뭐라나....
●우리 속언에‘기마욕솔노(騎馬欲率奴)’ 또는‘기승기마우사견자(旣乘其馬又思牽者)’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얘기가 아니라‘말 타면 구종부리고 싶고, 견마(경마)잡히고 싶다’는 말이다. 이게 인간의 속된 심리요 본성이고 인지상정인 것이다. 누구나'나는 처지나 형편이 풀려도 이 따위 생각 절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고 장담하지만, 형편이 풀려보지도 처지가 나아지지도 않은 사람들이 하는 소리 일 것이다.
●당랑거철(螳螂拒轍). 제 분수도 모르고 저 보다 큰 상대에게도 마구 덤비는 오줌싸개(사마귀)의 모습은 얼마나 눈꼴이 신가? 오줌싸개(사마귀)를 한자로 당랑(螳螂)이라고 하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퀴즈 우리말 겨루기는 아니지만, 오줌싸개가 버마재비라는 또 다른 순수한 우리 말 이름도 가졌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좀 드물다. 70년 말에 밑바닥 생활을 하던 어떤 청년이 돈을 벌면서 작게는 명품 신변잡기, 담뱃불 붙이는 라이타. 브랜드 가구 등 시쳇말로 족보 있는 것들로 치장하고 심지어 오랜 친구도 멀리해가며 사회의 주류로 변신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당시 강남의 개발붐을 빗댄 ‘최일남’의 ‘춤추는 버마재비’라는 수작의 단편소설이 있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하는 행위가 바로 당랑거철(螳螂拒轍)이었다.
●VIP도 모자라 이젠VVIP라는 게 있더라. 이거 어떤 놈이 만든 건가? 이런 제도를 어떤 개 자슥들이 만들었나 이거다. 모르긴 몰라도 주로 정치하는 놈들, 재벌들, 돈 많은 놈들..등등 아무튼 소위 방귀 꽤나 뀌는 놈들이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저희들이 만들고 저희들 덫에 걸리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자랑이 아니고, 내 비록 산골의 농사꾼이지만 농사를 짓기 위해 화물차, 마누라 차, 내 것. 집안에 차가 3대다. 내 것은 나 같은 촌놈과 어울리지 않게 차령3년이 좀 넘은 H사의 3.8풀 옵션 최고급차량이다. 서울 딸내미아파트에 갈 때 마누라 차를 타고가면 경비실에서 꼬치꼬치 캐묻고 그전 살던 곳에서는 출입증에 싸인까지 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차를 몰고 들어가면 확인도 않고 문을 열어주며 송구하게도 경례까지 붙여 준다. 이러니....2.0 마누라 차 몰고 갈 기분이 들겠는가? 거드름을 피우진 않았지만, 국가적 낭비인 줄 알면서도 딸내미 집에 갈 때는 꼭 내 차를 몰고 간다.
●또 난리도 아니다. 조현아의 대한항공 회항 이후 우리 사회에 일어난 甲질 하고도 꼴甲질이 잦아들기는커녕 더 기승을 부리는 양상이다. 경기도 부천의 某백화점 VVIP가 주차요원을 무릎 꿇리고 싸다구까지 때렸다고 난리를 피웠는데 어제는 대전의 또 다른 백화점에서 산 옷을 교환해 주지 않는다며 직원에게 싸다구를 올리고 폭력을 행사한 여편네가 있었단다. 부천과 대전의 甲질 양상은 차이가 있지만, VIP심지어 VVIP라는 제도를 왜 만들어서 지들이 곤욕을 당하는가?
●그런데 이미 밝혔지만,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해서 만든, 설령 그것이 부지불식간 시나브로 만들어진 제도라면 甲질을 하던 꼴甲질을 하던 수용하거나, 더럽고 아니꼽지만 참아 주는 것도 또 방법이 아닐까? 甲질을 하던 꼴甲질을 하던 그것은 그것들의 개인적 인성 문제지 그것을 대한민국의 메이저는 물론 찌라시 매체까지 떠들어서야 쓰겠는가? 아니한 말로 이런 정도는‘주간서울’급의 황색 찌라시들이 다루어야 하는 거 아닌가?
●1호차에 동승한 나(따까리)는 그날의 상황을 너무 잘 안다. 요즘 같은 엄동지절이었다. 강원도 화천 골짜기의 칼바람이 살을 애는 그런 날이었다. 그날 군단장님 사택에서 예하부대장님들의 만찬이 있었고 일 배 일 배부일 배들 하셨는지 시간이 많이 늦었다. 부대를 들어가려면 별도로 4거리의 헌병초소 하나를 통과해야 했었다. 김가인지 박가인지 성은 기억 안 나지만, 아무튼 헌병병장이었다. 평소 같으면 1호 차량(사실 나는 의전 상 이차를 타고 가끔 부대장님의 가족을 모시러 서울을 다니곤 했었다. 헌병들은 선임탑승이 없더라도 1호차만 보고 무조건 구호와 함께 경례를 붙인다. 일종의 VIP에 대한 예우다.)을 보고 ‘타~안 켜~얼!!!’이라는 구호와 함께 무조건 무사통과지만 그 헌병병장은 무조건 통과 대신 1호차를 정지시킨 후 부대장님이 탑승한 것을 확인하고‘타~안 켜~얼!!!’이라는 구호를 다시 한 번 외친 후 통과 시켜 주었다. 얼근하게 취한 부대장님은 함께 동승한 보좌관 박 대위에게“절마 관등성명 알아놔!”라고 명했다. 그 다음날 그는(헌병) 15일 포상휴가를 갔다. 이거 거짓말 하나 안 보탠 사실이다.
●이거 누구의 잘못이고 누가 잘한 것인가? 피해자는 누구이며 가해자는 또한 누구인가? 잘 생각해 보면 누구의 잘 잘못도 아니고 우리 모두가 피해자고 가해자인 것이다. 또한 우리 모두가 앓기도 극복하기도 해야 하는 병리현상이다. |